한국시사경제 안창현 기자 |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린다. 국민이 주권을 행사하는 가장 기본적인 절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6월 3일 치러진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과정에서 일부 지역 유권자들이 투표용지 부족으로 인해 밤 10시까지 투표소에 남아 있어야 했다는 사실은 많은 국민에게 충격을 안겼다.
특히 서울 송파구를 비롯한 일부 지역에서는 투표 마감 시간이 지났음에도 투표를 하지 못한 유권자들이 긴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선거는 예측 불가능한 자연재해가 아니다. 수개월 전부터 준비하는 국가적 행사다. 그런데도 가장 기본적인 투표용지 수급조차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것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관리 체계 자체의 문제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둘러싼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에서는 코로나 확진자 사전투표 과정에서 이른바 ‘소쿠리 투표’ 논란이 발생했다. 투표함 대신 플라스틱 바구니, 쇼핑백, 종이상자 등에 투표용지를 담아 이동시키는 장면이 공개되면서 국민은 큰 충격을 받았다. 당시 선관위는 관리 부실을 인정하고 사과했지만 국민이 받은 충격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이후에도 채용 비리 의혹, 가족 특혜 채용 논란, 고위 간부 자녀 특혜 의혹, 부실 감사 문제 등이 잇따라 제기됐다. 선관위는 헌법상 독립기관이라는 특수성을 갖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오히려 이러한 독립성이 견제와 감시의 사각지대를 만들었다는 비판도 나온다.
더 큰 문제는 국민 신뢰의 추락이다.
민주주의에서 선거 결과는 승자와 패자를 가를 수 있지만, 결과에 승복하게 만드는 힘은 신뢰에서 나온다. 선거를 관리하는 기관이 공정성과 전문성에 대한 의심을 받기 시작하면 민주주의의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실제로 일부 국민은 오랫동안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해 왔다. 그 주장들의 사실 여부와는 별개로 중요한 것은 국민 상당수가 선거 과정의 투명성에 의문을 품고 있다는 점이다. 선거관리 기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부정이 없었다”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의심조차 들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선관위가 논란이 발생할 때마다 사과문을 발표하고 담당자를 문책하는 방식으로 대응해 왔지만, 국민이 체감하는 변화는 거의 없었다. 문제가 반복된다는 것은 개인의 실수가 아니라 조직 문화와 시스템의 문제라는 의미다.
이제는 단순한 보완이나 부분 개혁으로는 부족하다.
필요한 것은 선관위의 전면적인 혁신이다.
첫째, 외부 감시 체계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
현재 선관위는 독립성을 이유로 다른 국가기관의 통제를 상대적으로 거의 받지 않는다. 하지만 독립성과 무책임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감사원 감사, 국회 보고 강화, 민간 전문가 참여 확대 등을 통해 국민이 직접 감시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둘째, 선거 전 과정의 투명성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
투표용지 인쇄부터 보관, 운송, 개표까지 모든 과정을 실시간 공개 수준으로 투명하게 운영해야 한다. 이미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CCTV 공개, 전자 추적 시스템, 시민 참관 확대 등을 통해 신뢰를 확보하고 있다. 국민이 보고 확인할 수 있을 때 신뢰도 함께 높아진다.
셋째, 조직 인사 시스템을 전면 개편해야 한다.
반복적으로 제기된 특혜 채용과 내부 인사 논란은 조직 신뢰를 무너뜨리는 핵심 요인이다. 공개 경쟁 채용 확대, 외부 인사 검증, 순환 보직 강화 등을 통해 폐쇄적 조직 문화를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넷째, 선거관리의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기본적인 수요 예측 실패다. 데이터 분석과 현장 운영 능력을 갖춘 전문가 중심의 조직으로 변화해야 한다. AI와 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한 선거관리 시스템 도입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 국민 신뢰 회복을 위한 독립적인 혁신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
선관위 스스로 자신을 개혁하겠다는 선언만으로는 부족하다. 학계, 법조계, 시민사회, 정보기술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범국민 혁신위원회를 구성해 조직 전반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국민은 완벽한 기관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실수하지 않는 조직도 없다. 그러나 같은 실수가 반복되고, 문제가 터질 때마다 비슷한 해명과 사과만 되풀이된다면 신뢰는 회복될 수 없다.
민주주의는 투표로 시작되지만, 신뢰로 완성된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단순한 행정 착오가 아니다. 그것은 대한민국 선거관리 시스템이 보내는 위험 신호일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부분적인 리모델링이 아니다. 국민의 신뢰를 다시 세우기 위한 근본적인 재건축이다.
선거관리위원회가 스스로 변화하지 못한다면 결국 국민이 변화를 요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요구는 앞으로 더욱 거세질 가능성이 크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는 선거이고, 선거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는 국민의 신뢰다. 이제 선관위는 그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근본적인 혁신에 나서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