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사경제 안창현 기자 | EU 대기질 정책·EPBD·일본 기후적응 사례·AI 기반 대기오염 예측 등 집중 논의
“기후변화·대기오염·건물·건강은 하나의 문제…예측 중심의 선제적 대응 필요”
기후변화로 폭염과 집중호우, 가뭄, 산불 등 극한기후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는 가운데 대기오염과 국민 건강, 건축환경을 하나의 틀에서 바라보고 인공지능(AI)을 활용해 기후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국제적인 논의가 서울에서 펼쳐졌다.
사단법인 세계맑은공기기후연맹과 기후에너지환경부는 3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2026 World Clean Air Forum(2026 세계 맑은공기 포럼) 국제심포지움’을 개최했다.
이번 포럼은 ‘AI 시대에 함께 지키는 맑은공기, 함께 이루는 기후적응(Together for Clean Air, Together for Climate Adaptation in the Era of AI)’을 주제로 열렸다.
세계보건기구(WHO)를 비롯한 유럽연합(EU),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 한국·일본·중국·싱가포르·인도·몽골·덴마크 등 국내외 전문가들이 참여해 기후변화와 대기오염이 건강과 도시환경에 미치는 영향부터 AI를 이용한 대기오염 예측, 건축물의 탄소중립, 각국의 기후적응 정책까지 폭넓게 논의했다.
특히 이번 포럼에서는 기후변화와 대기오염을 각각의 환경 문제로 분리해서 접근하기보다 ‘기후변화-대기질-건축환경-인간의 건강’이 서로 연결된 하나의 문제라는 인식 아래 통합적인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데 관심이 모아졌다.
WHO·EU 전문가 참여…기후변화와 대기질·건강 연결
포럼은 김윤신 세계맑은공기기후연맹 이사장의 개회사에 이어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의 기조발표와 김진식 기후에너지환경부 대기환경국장의 환영사로 시작됐다.
첫 번째 기조연설에서는 WHO·APCEH의 Josselyn Mothe 박사가 ‘기후변화, 대기질 및 건강 분야의 WHO 활동과 최근 동향’을 발표했다.
이어 이종환 주한 EU대표부 기후환경정책담당관은 ‘기후적응과 대기질 관리를 위한 유럽연합의 전략적 정책 방향’을 소개했다.
EU가 강조하는 것은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온실가스를 줄이는 ‘완화(Mitigation)’만으로는 현재의 기후위기에 충분히 대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미 발생하고 있거나 피하기 어려운 폭염·홍수·가뭄·산불 등 기후위험으로부터 사람과 재산, 산업과 사회기반시설을 보호하기 위한 ‘기후적응(Climate Adaptation)’을 동시에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럽은 특히 세계 평균보다 빠른 속도로 온난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판단 아래 교통, 농식품, 에너지안보, 보건, 산업 등 사회 전반에서 기후위험을 파악하고 대응 능력을 강화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EU, 기후위험 평가 토대로 ‘기후적응’ 본격화
EU의 기후적응 정책에서 중요한 기반 가운데 하나는 유럽환경청(EEA)이 2024년 발표한 ‘유럽 기후위험 평가(EUCRA·European Climate Risk Assessment)’다.
EUCRA는 기후변화가 유럽의 환경과 경제, 사회에 어떤 위험을 가져올 것인지 평가하고, 개별 국가의 국경을 넘어 연쇄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복합적 기후위험까지 다룬다.
특히 기존 정책의 대응 속도가 빠르게 변화하는 기후위험을 충분히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제기하면서 보다 신속하고 적극적인 기후적응 정책을 요구하고 있다.
EU는 중앙정부 차원의 정책만으로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보고 지방정부와 지역사회의 역할도 확대하고 있다.
‘EU Mission: Adaptation to Climate Change(유럽연합: 기후변화 적응 미션’)’에는 300개가 넘는 유럽의 지역과 지방정부가 참여해 현재와 미래의 기후위험을 분석하고 지역별 대응 방안을 개발하는 한편 장기적인 기후회복력을 높이기 위한 혁신적인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기후정책의 중심이 단순한 온실가스 감축에서 ‘기후재난이 발생해도 사회가 견디고 회복할 수 있는 능력’, 즉 기후회복력 강화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EU “대기오염은 환경문제이자 건강·경제 문제”
대기오염 문제도 이번 포럼의 핵심 의제로 다뤄졌다.
EU 발표 자료에서는 대기오염을 단순한 환경오염이 아니라 건강·사회·경제·생태계에 동시에 영향을 미치는 복합적인 위험요인으로 설명했다.
특히 미세먼지(PM2.5), 이산화질소(NO₂), 오존(O₃) 등 주요 대기오염물질은 조기사망과 각종 건강 문제를 일으키는 주요 환경위험으로 지목된다.
대기오염은 어린이와 노인, 기존 질환자와 사회경제적 취약계층에 상대적으로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환경문제를 넘어 사회적 형평성 문제와도 연결된다.
경제적인 피해도 크다. 의료비 증가와 노동손실은 물론 농작물과 산림, 생태계 및 건축물에까지 피해가 발생하기 때문에 대기질 정책을 보건과 경제, 산업정책까지 연계해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EU 대기질 정책 강화…2050년 ‘제로 오염’ 지향
EU는 대기질 개선을 위해 대기오염물질의 농도 관리와 배출원 감축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미세먼지(PM10)과 초미세먼지(PM2.5), 이산화황(SO₂), 이산화질소(NO₂), 오존(O₃) 등의 대기 중 농도를 관리하는 동시에 국가별 배출 감축과 산업시설, 연소시설, 자동차 및 연료 등에 대한 배출기준을 연계하는 방식이다.
특히 2024년 개정된 EU 대기질 지침은 장기적으로 2050년 ‘제로 오염(Zero Pollution)’이라는 방향을 지향하면서 2030년을 향해 대기질 기준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대기질 측정뿐 아니라 모델링을 확대하고 초미세입자와 블랙카본, 암모니아 등 새로운 관심 오염물질에 대한 모니터링도 강화한다.
또 국민에게 최신 대기질 정보를 신속하게 제공하고 대기오염으로 발생할 수 있는 건강영향과 행동요령을 알리는 등 환경정보의 공공성도 강조되고 있다.
EPBD, 이제는 ‘건물 밖 공기’에서 ‘건물 안 공기’까지
이번 포럼에서는 대기오염과 기후변화 문제를 건축환경과 연결하는 새로운 접근도 주목받았다.
대표적인 것이 EU의 EPBD(Energy Performance of Buildings Directive: 건물 에너지성능 지침)다.
EPBD는 유럽 건축물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 장기적으로 건물 부문의 탈탄소화를 달성하기 위한 EU의 핵심 정책수단이다.
건물의 에너지성능 개선, 기존 건물의 리노베이션, 최소 에너지성능 기준, 재생에너지 확대, 전기화 등을 통해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추고 궁극적으로 제로배출 건물(Zero-Emission Building)로 전환하는 것이 핵심 방향이다.
이는 기후변화 대응에서 건축물이 차지하는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에너지 효율만 높인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건물의 냉난방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 기밀성을 높일 경우 충분한 환기가 이뤄지지 않으면 실내공기질이 악화될 수 있다. 따라서 탄소배출과 에너지 소비를 줄이면서 동시에 사람이 생활하는 공간의 공기질과 건강까지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에 따라 IEQ(Indoor Environmental Quality: 실내환경질)라는 개념도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앞으로 친환경 건축은 단순히 ‘에너지를 적게 사용하는 건물’을 넘어 ‘탄소를 적게 배출하면서 깨끗한 공기와 건강하고 쾌적한 생활환경을 제공하는 건물’로 발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 사토시 나카이 교수, 기후적응과 대기질 개선 대응 소개
아시아 국가들의 기후적응 경험도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일본대기환경학회장이자 요코하마국립대학교 나카이 사토시(Satoshi Nakai·中井里史) 교수는 ‘일본의 기후적응 및 대기질 개선 대응’을 주제로 일본의 정책과 연구 방향을 소개했다.
나카이 교수는 도쿄대학교 의학부 보건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보건학 석·박사 과정을 밟은 환경보건 분야 연구자로, 대기환경과 인간의 건강을 연결하는 연구를 수행해 왔다.
그의 연구 분야가 이번 포럼에서 의미를 갖는 것은 대기오염을 단순히 대기 중 오염물질 농도의 문제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실제로 얼마나 오염물질에 노출되고, 그 결과 건강에 어떤 영향을 받는가'라는 관점에서 접근한다는 데 있다.
기후변화가 기온과 강수, 대기 순환 등에 영향을 미치면서 미세먼지와 오존 등의 발생과 이동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는 기후적응과 대기질 개선, 환경보건 정책을 더욱 긴밀하게 연결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중국·인도·몽골·싱가포르 등 각국 사례도 공유
중국과 인도, 몽골, 싱가포르 등 아시아 각국의 정책과 연구 성과도 소개됐다.
중국과학원 대기물리연구소의 빈 첸(Bin Chen) 교수는 ‘중국의 기후적응 및 대기질 개선 대응’을 발표했으며, 인도 델리기술대학교의 사그닉 디(Sagnik Dey) 교수는 ‘인도의 기후변화 완화에 따른 대기오염 저감과 건강 편익’을 주제로 기후정책과 국민 건강의 연관성을 제시했다.
몽골 환경기후변화부 기후대기국의 차츠랄 바트먼크(Tsatsral Batmunkh) 박사는 건강 관점에서 대기질과 기후정책을 통합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싱가포르 국립대학교의 궉 와이 탐(Kwok Wai Tham) 교수는 ‘싱가포르 건축환경 부문의 탄소중립 전환 로드맵’을 통해 고온다습하고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에서 건축물의 에너지 효율과 탄소중립을 어떻게 동시에 달성할 것인지에 대한 방향을 제시했다.
이들 사례는 국가마다 기후와 산업구조, 도시환경은 다르지만 기후적응과 대기질, 에너지, 건축 및 건강정책을 서로 연결해야 한다는 공통된 과제를 안고 있음을 보여줬다.
AI, 대기오염 ‘사후 대응’에서 ‘사전 예측’으로
이번 포럼의 또 다른 핵심 화두는 'AI'였다.
이재영 아주대학교 교수는 ‘기후변화에 따른 AI 기반 대기오염 예측과 노출·건강 영향’, 전성우 고려대학교 교수는 ‘AI를 이용한 기후위기적응 관리’를 주제로 각각 발표했다.
기후변화가 심화될수록 대기환경을 결정하는 변수 역시 복잡해진다.
기온과 강수량, 풍향과 풍속, 대기 순환뿐 아니라 산업시설의 배출량, 자동차 통행량, 도시구조 등 수많은 요소가 대기질에 동시에 영향을 미친다.
AI의 강점은 이러한 방대한 데이터를 종합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는 데 있다.
기상·대기질 관측자료와 위성정보, 교통량과 산업시설 배출자료 등을 AI가 분석하면 특정 지역에서 미세먼지나 오존 농도가 높아질 가능성을 보다 빠르게 예측하고 위험지역과 취약계층을 사전에 파악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이는 환경정책의 패러다임을 '오염이 발생한 뒤 대응하는 방식’에서 ‘위험을 미리 예측하고 피해를 예방하는 방식’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실내환경 연구에도 AI…“게임 체인저 될까”
AI의 활용 영역은 실외 대기환경에만 머물지 않는다.
덴마크공과대학교(DTU)의 파웰 와르고치키(Pawel Wargocki) 교수는 ‘IEQ 연구에서 AI는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인가?’라는 주제로 AI와 실내환경질 연구의 결합 가능성을 제시했다.
건물 내부에는 온도와 습도, 이산화탄소, 미세먼지, 환기량 등 수많은 환경요인이 존재한다. 여기에 건물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수와 활동, 외부 날씨까지 끊임없이 변한다.
AI가 이러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냉난방과 환기를 자동 조절할 수 있다면 에너지는 절약하면서 실내공기질과 쾌적성을 동시에 높이는 새로운 건물관리 시스템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결국 EPBD(Energy Performance of Buildings Directive: EU 건물 에너지성능 지침)가 건물의 탈탄소화를 위한 제도적 틀이라면, IEQ(Indoor Environment Quality: 실내환경질)는 그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의 건강과 쾌적성을 확보하는 기준이고, AI는 두 목표를 보다 정밀하게 연결하는 기술적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EU-한국 녹색 파트너십…환경 문제는 국경이 없다
국제협력 역시 포럼의 중요한 화두였다.
EU와 한국은 녹색 파트너십을 통해 기후중립이라는 공동 목표 아래 재생에너지와 에너지효율, 생물다양성과 산림, 순환경제와 오염 문제 등에서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EU는 다자협력과 국제적인 기후 리더십, 녹색금융과 기술지원, 자유무역협정의 지속가능발전 분야 등을 활용한 ‘녹색외교(Green Diplomacy)’도 추진하고 있다.
대기오염은 국경선에서 멈추지 않으며 온실가스가 초래하는 기후변화 역시 특정 국가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따라서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시아에서도 대기오염물질과 기후변화에 대한 공동 연구와 정보 공유, 예측기술 개발 등 국가 간 협력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맑은공기에서 기후적응까지…“결국 사람의 건강 문제”
이번 ‘2026 세계 맑은공기 포럼’에서 제시된 여러 국가와 전문가들의 발표를 관통하는 핵심은 ‘연결’이었다.
과거에는 대기오염과 기후변화, 건물 에너지, 실내공기질, 국민 건강을 각각 별도의 정책 영역으로 접근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나 기후위기가 심화되면서 이들 문제를 분리해서 해결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기후변화는 대기질을 변화시키고, 대기질은 인간의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건물에서 소비되는 에너지는 온실가스와 대기오염물질 배출에 영향을 주며, 건물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과정에서는 다시 실내공기질과 환기 문제가 발생한다.
여기에 AI가 등장하면서 방대한 기후·환경 데이터를 분석해 위험을 예측하고 정책 대응 시점을 앞당길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
따라서 미래의 환경정책은 ‘기후변화 → 대기질 → 건축환경 → 인간의 노출과 건강 → AI 예측 → 기후적응’을 하나의 연결된 시스템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온실가스를 줄이는 ‘완화’와 이미 현실이 된 기후위험에 대비하는 ‘적응’도 함께 추진돼야 한다.
궁극적으로 맑은공기를 만드는 것은 단순히 대기 중 오염물질 수치를 낮추는 일이 아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도시와 건물을 바꾸고 에너지 사용방식을 전환하며 건강을 보호하는 사회 시스템을 구축하는 문제다.
AI 시대의 기후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술 자체보다 그 기술을 어떻게 사람의 생명과 건강, 도시의 안전과 기후회복력을 높이는 데 활용할 것인가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이번 세계 맑은공기 포럼은 그 해답이 ‘맑은공기와 기후적응을 함께 추진하는 것’에 있음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




















































